
그림설명 고다이버 부인 (lady godiva), 1898 / John collier 作
11세기 영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격변하는 시대였다. 본래 영국은 6세기 이후에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 족의 나라였는데 그러다가 8세기와 10세기에 북유럽의 바이킹 족인 데인족의
침략을 받아 11세기 초반에는 데인족의 왕 크누트1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데인족의 통치는 영국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특별히 농민계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 하던 자유농민들이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나 다름없는
농노의 신분이 된 것이다. 번성한 마을 코벤트리도 영국 전체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코벤트리의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농민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세금을 올려 징수하고 있었다.
자고나면 오르는 가혹한 세금에 농민들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 지고 원성이 높아 갔다.
가혹하고 잔인한 영주 레오프릭에게는 아름답고 신앙심 깊은 고다이버(Godiva)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날이 몰락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의 과중한 세금정책을 비판했다.
세금을 줄여 영주와 농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라고 남편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레오프릭은 고다이버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의 숭고한 마음을 비웃기까지 했다.
그래도 간청을 그치지 않자 그녀에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고다이버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몸으로 직접 보이라는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바퀴 돈다면 세금감면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고다이버는 참담한 갈등에 빠졌다. 그러나 남편의 폭정을 막고 죽어가는 농민을 구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 길을 택하겠다고 생각한 고다이버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 들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코벤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이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농민들은 한가지 약속을 하게 된다. 고다이버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동안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알몸을 보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마침내 시종들의 눈물어린 배웅을 뒤로하고 말에 올라 마을을 도는 날 온 마을은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집집마다 커튼을 드리운 채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고 은혜로운 고다이버의 시위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코벤트리의 양복재단사 톰이
마을사람들과의 약속을 잊어버렸고,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부인의 벗은 알몸을 보려는 순간,
그만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일화에서 유래하여 영국에서는
남몰래 엿보는 사람(관음증)을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 때 고다이버의 나이 불과 16세.
레이디 고다이버의 이야기는 이후 학자와 역사가들에게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숭고한 뜻을
관철 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곤 하지만 그녀가 행한 알몸 시위가 너무나 상식에 반하는
파격 이기 때문이다. 고다이버리즘(Godivaism)은 숭고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알몸 시위를
빗대어 정의를 위해 관행이나 상식에 반하는 불가피한 파격적 행동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일종의 정치적 용어인데 오늘날 정치인들이 종종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리적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녀의 이름을 남용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들은 반드시 돈이나 힘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 발전의 이면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작은 자들의 숭고한 자기 희생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고다이버의 선택과 행동이 옳았느냐를 논쟁 하기에 앞서 내게는 John collier의
그림 lady godiva가 淫畵가 아닌 聖畵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사랑의 희생은 자신 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행동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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