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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경제 용어가 있다.
물질적, 인적 자본에 뒤이어 오늘날 경제 성장의 중요 요소로 꼽힌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을 말하는데 사회적 자본이 잘 확충된 나라일수록
국민간의 신뢰가 높고 협력과 소통이 잘 이루어져
거래 비용이 적게 들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
결과적으로 국민 소득도 올라간다는 이론이다.

TOEFL 시험에 '듣기 평가'라는 분야가 있는데
영어로 말하는 걸 듣고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참 힘든 분야이다.
국어 과목 수업 중에도 '듣기'라는 분야가 있다.
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이야 다 알아듣을텐데
그러면 그 과목은 뭘 배우고 훈련하는 걸까?
국어 수업의 '듣기'는 말하는 내용과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나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양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馬耳東風 이나 秋風過耳, 牛耳讀經처럼
남의 말에 귀담아 듣지 않는다거나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표현도
잘 알아 듣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영어에서 듣는다는 단어를 크게 나누면 Hear와 Listen인데
전자는 그냥 들리는 것이고 후자는 의지를 가지고 듣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귀를 여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사람이 살면서 남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하고,
세계의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예 귀를 막고 살면 사회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비생산성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부족이다.
소통부족은 이 시대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이기심에 볼모 잡혀있기 때문이다.

가청 음역을 나타내는 단위로 헤르츠(Hz)를 사용한다.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 음역대는 16-20,000Hz
서로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는 회화음역대는 250-2,000Hz,
가장 편안한 가청 주파수는 500-5000Hz,
동물은 들을 수 있고 사람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가 있다.
소리라고 사람이 다 듣는 것 아니다.
또한 같은 사람끼리도 젊은이는 듣고 노인은 듣지 못하는 음역대가 있다.
일반적으로 십대들은 십대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가 있다.
틴벨이라는 말이 있는데 틴벨이 처음 발명된 것은
2005년 하워드 스텝레온에 의해서다.
초기에 그것은 모스키토 버즈(mosquito buzz)라고 불렸다.
그는 시끄러운 공장 근처에서 빈둥거리는 불량한 아이들을
내쫒기 위해 십대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인
1700㎐ 음파를 고안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소리는 듣는 당사자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지만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방해 받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해 요인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잘 경청하는 것은
복잡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한다.

차 안에서 헤드폰을 끼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소녀를 본 적이 있다.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듣지 못하는 그 무엇이
그녀를 즐겁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되면
세상의 요란함 속에도 온 세상이 우울해하는 가운데서도
홀로 웃을 수 있다.

성경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라는 말씀이 있다.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도 있다.

20세기初 오디오 기기 초창기에 개발되었던 Victrola 유성기나
보통 RCA Victor로 알려진 LP 판에는
나팔통 곁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개(Nipper Dog)의 그림이 붙어 있다.
옛날 유성기는 녹음 기술이 현저하게 떨어져,
오늘날과는 달리 잡음이 많이 섞여 있었는데
여하한 소음 속에서도 주인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는 개의 모습을 통해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관심을 갖도록 소비자를 유도하고 있다. 

로고와 함께 새겨진 눈에 띄는 카피가 인상적이다.
' His Master's Voice'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과 너무 일치한다.

RCA Nipper Dog은 잡음에 가린 음악 소리에 이렇게 귀를 기울이는데
세상의 잡음 속에서 우리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나의 남은 인생, 세상의 소음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말씀하옵소서 주여!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