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귀를 기울여보면
정말 다양한 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리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자기 주장을 외쳐댑니다.
방송매체를 통해 생중계되는 소리의 홍수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귀를 막지말고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리고 그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지,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야 할 우리들의 문제를 끄집어 낸 소리인지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에 이런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양딸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한때 촉망받는 소리꾼이었던 아버지 유봉은
자기 딸 송화를 통해 소리에 대한 한을 풀려고 합니다.
그러나 딸이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부러 극약을 보약이라고 속여 달여 먹이고 눈을 멀게 합니다.
장님을 만들면서까지 소리를 붙잡아 두려는 아버지.
그 딸에게서 한 맺힌 소리가 나오지 않으니까 이렇게 야단을 칩니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법이여 ..."
어찌 생각해보면 소리에 정신나간 아버지의 섬뜩함을 느끼게 하고
목적한바를 이루려는 세상적인 열망과 집착을 봅니다.
빗나간 열정일 뿐인데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까요?
마치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한 것을 통해
빛의 아들들이 이 시대의 아들들 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책망받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가 뭐기에 눈까지 멀게 하는데 ...
우리 시대에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어떤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혼자 묻고 저 혼자 답을 써봅니다.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도 필요하고 성스런 건물을 세우는 중장비 소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당신의 교회에 원하시는 본질적인 소리는 그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들려주어야 할 소리는 무엇입니까?
또다시 고난주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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